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김경식 2025. 9. 5. 장애인등록제도에서의 신청주의 개선 방향 우리나라의 장애인등록제도는 철저히 신청주의에 기반한다. 본인이나 가족, 대리인이 직접 진단서를 준비하여 지자체에 신청하지 않으면 장애인으로서의 권리와 서비스를 보장받기 어렵다. 문제는 이 과정이 번거롭고, 정보 접근성이 낮으며, 고령자나 중증장애인처럼 스스로 절차를 밟기 어려운 집단은 아예 제도의 울타리 밖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행정적 등록 과정이 곧 권리 보장의 관문이 되면서, 장애가 있음에도 등록하지 못한 ‘비등록 장애인’이라는 사각지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러한 우리나라의 한계가 보다 뚜렷해진다. 스웨덴은 장애인 등록을 권리 실현의 절차로 간주한다. 병원이나 재활기관에서 장애 사실이 확인되면 지자체에 자동 통보되고, 지자체는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 자격을 안내한다. 신청주의라기보다 행정이 먼저 움직여 권리 보장을 책임지는 구조다.
독일 역시 신청주의를 채택하지만, 행정청이 직접 병원·의사에게 자료를 요청해 판정을 내리므로 개인이 방대한 서류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수첩 제도를 운영하지만, 의료기관·학교·복지관이 신청을 적극적으로 안내하기 때문에 신청 과정의 장벽이 낮다.
미국도 단일한 장애인등록증은 없으며, 사회보장 프로그램(SSDI/SSI)을 통해 장애를 인정한다. SSDI는 근로경력이 있는 장애인에게 SSI는 저소득층 장애인에게 지급된다. 신청 후 주정부의 DDS가 의학적 자료와 근로능력을 평가하고, 승인되면 소득보장과 함께 Medicare·Medicaid 의료보장도 자동 연계된다.
안정성은 높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대기 기간이 길며 초기 승인율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영국과 미국은 지원과 연계된 제도가 강점이지만, 행정적 문턱이 높고 심사 과정에서의 배제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영국은 우리나라처럼 단일한 장애인등록증은 없고, 복지급여를 통한 장애 인정이 제도의 핵심이다.
대표적으로 DLA(Disability Living Allowance), PIP(Personal Independence Payment), ESA(Employment and Support Allowance)가 있다. 본인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독립평가기관이 기능평가를 진행하여, 세면·식사·대화·이동 등 12개 생활 영역을 점수화한다.
이 점수에 따라 급여 수준이 달라지고, 동시에 교통비 감면·주택 개조 지원·세금 감면 등 다른 서비스와도 연계된다. 장점은 생활 보장과 직결된다는 점이지만, 심사가 지나치게 엄격해 많은 신청자가 탈락하거나 재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영국의 제도는 급여와 서비스의 연결성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과도한 심사로 인한 배제와 불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비교는 우리나라의 제도가 어디에서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첫째, 행정의 적극 개입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재활원·국민연금공단 등과 행정기관을 연계하여 장애가 우려되거나 의심되면 지자체가 먼저 안내하거나 권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의료인의 안내 의무화가 필요하다. 장애 진단을 내리는 순간, 의료인은 등록 절차와 지원 제도를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하도록 제도화할 수 있다.
셋째, 찾아가는 서비스 강화가 요구된다. 신청 절차를 밟기 어려운 고령자·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복지공무원이나 권익옹호기관이 직접 방문해 신청을 지원하는 것이다.
넷째, 행정 접근성 개선이 핵심이다. 언어·문해력·이동의 제약이 있는 장애인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다층적 창구를 구축해야 한다. 복잡한 행정 문서를 간소화하고, 원스톱 방식의 서비스 제공을 강화하는 것도 행정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장애등록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권리의 출발점이다. 신청주의의 이름으로 권리 보장이 유예되거나 배제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인 것이다.
스웨덴이 보여준 행정의 적극성, 독일이 보여준 서류 부담 완화, 일본이 보여준 안내 문화, 그리고 영국·미국이 보여주는 급여연계형 제도의 경험은 모두 우리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장애등록을 ‘도와주는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권리를 스스로 찾아 나서야만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는 더 이상 현시대의 앞서가는 복지국가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